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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스무살 나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by 건강백서랩 2025. 11. 28.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화면 속 서연과 승민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스무살이 함께 재생되는 느낌이 듭니다. 강의계획서가 잔뜩 적힌 한 장짜리 종이와 낯선 건물 복도와 어색한 조모임 자리에서 어찌할 줄 몰라 하던 그 시절의 내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분명 첫사랑 이야기인데도 특별한 사건보다 수업 시간의 공기와 과제를 핑계로 가까워지는 과정과 문자 한 통을 보내기까지 수십 번 고민하던 감정이 더 또렷하게 남습니다. 그래서 건축학개론은 스무살 나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라는게 말이 어울립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장면을 따라가며 스무살의 서툰 언어와 풍경과 선택을 천천히 짚어 보고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함께 정리해 보겠습니다.

 

건축학개론 스무살 나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스무살 강의실에 다시 앉게 만드는 서연과 승민의 서툰 감정

건축학개론의 과거 파트는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스무살 때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본 어색한 순간들로 채워집니다. 교양 수업 첫 시간에 서로의 이름도 잘 모르는 학생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고 교수의 말은 절반 정도만 귀에 들어오는 상황에서 승민은 서연을 처음 봅니다. 특별한 연출 없이 살짝 길게 머무는 카메라와 승민의 애매한 표정만으로도 이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스무살의 첫 관심이 딱 저런 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눈에 자꾸 밟히지만 그렇다고 직접 다가갈 용기까지 생기지는 않는 상태 말입니다. 과제를 함께 하게 된 뒤 둘의 관계는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주고받는 말들은 대부분 서툴고 투박합니다. 승민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숨기려는 듯 괜히 까칠하게 대하고 서연은 그 안에 숨은 호감을 눈치채면서도 모르는 척 넘깁니다. 둘 사이의 대화는 늘 돌려 말하기와 농담과 의미 없는 말장난으로 가득합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늘 한 발짝 뒤에 숨어 있습니다. 화면만 보고 있어도 관객은 답답함과 공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때의 우리도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기울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장면이 필요합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과제 준비와 같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과 동네를 함께 걸으며 나누는 사소한 대화들이 쌓이면서 서연과 승민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관계를 명확히 이름 붙이는 순간에 다가갈수록 둘은 점점 더 말을 잃습니다. 고백 한 번으로 우정과 일상이 모두 어색해질까 봐 두려운 마음은 스무살의 연애에서 늘 가장 큰 장벽입니다. 그래서 둘은 단단한 벽이 아니라 아주 얇고 불안한 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계속 맴돕니다. 이 서툰 감정은 건축학개론이 가진 가장 큰 힘입니다. 화려한 고백 장면이나 완벽한 타이밍의 키스가 아니라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큰 망설임과 오해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강의실에서 옆자리에 앉을까 말까 고민하던 기억과 문자 답장을 보낼까 하루 종일 망설이던 순간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영화 속 승민을 보고 있으면 그때의 내가 떠오르고 서연을 보고 있으면 스무살 때 좋아하던 누군가가 생각납니다. 관객이 영화에 감정 이입을 넘어 자기 경험을 다시 꺼내 보게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스무살을 통째로 불러내는 배경과 소품 그리고 집이라는 공간

건축학개론이 스무살을 현실감 있게 되살리는 데에는 배경과 소품의 힘도 큽니다. 오래된 캠퍼스 건물과 조금은 촌스러운 강의실 책상과 조별 과제를 위해 모여 앉은 스튜디오 공간은 세대가 달라도 대학 초년생이라는 정서를 공유하게 만듭니다. 시험이 다가오면 늘 비슷한 모습으로 가득 차는 도서관 풍경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엎드려 자고 있고 누군가는 필기를 하다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익숙한 장면들을 보는 동안 관객은 자연스럽게 자기 학교와 자기 시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특히 인상적인 요소는 음악과 카세트테이프입니다. 서연이 승민에게 건네는 테이프에는 당시 유행하던 노래와 서연의 취향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녹음해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은 단순한 호감 표현을 넘어 작은 고백에 가까운 행위였습니다. 건축학개론은 이 감성을 꼼꼼하게 살려 냅니다. 테이프 표지에 적힌 글씨와 약간의 잡음이 섞인 소리까지도 스무살의 손길과 공기를 느끼게 합니다. 지금의 관객이 보더라도 낡은 물건이 아니라 마음을 건네던 매개체로 보이기 쉽습니다. 집이라는 공간 역시 스무살을 불러내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서연의 집은 그 자체로 그녀의 과거와 가족의 상처와 미완성된 꿈이 뒤섞인 공간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낡은 집이지만 서연에게는 어릴 때의 기억과 부모와의 갈등과 아직 정리하지 못한 감정이 모두 얽힌 장소입니다. 승민이 이 집을 바라보는 시선은 건축학도 특유의 관찰력과 첫사랑을 향한 호기심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스무살의 우리에게도 비슷한 공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래된 아파트 복도와 반지하 방과 자취방 같은 곳들 말입니다. 그곳들은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니라 나의 성장통과 첫사랑과 좌절을 동시에 품고 있던 장소입니다. 건축학개론은 서연의 집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를 물리적인 형태로 다시 만지고 고치는 경험을 보여 줍니다. 벽을 허물고 창을 넓히고 오래된 자국을 정리하는 일이 곧 서로의 마음에 남은 과거의 흔적을 정리하는 과정과 겹칩니다. 이 장면들은 스무살의 풍경을 낭만적으로만 포장하지 않습니다. 당시의 부족함과 불편함과 불안함까지 함께 떠올리게 만듭니다. 비좁은 방에서 누군가와 밤늦도록 통화하던 기억과 부모님 눈치를 보며 집에 들어가던 순간과 시험과 연애와 장래에 대한 걱정을 동시에 떠안고 살던 시절이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참 답답하고 불안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이상하게도 그 시절의 나를 안아 주고 싶다고 말입니다.

 

어른이 된 내가 스무살의 나에게 건네는 늦은 위로

건축학개론의 현재 파트에서 승민은 이미 건축가로 자리 잡은 어른입니다. 서연이 설계를 의뢰하며 다시 등장했을 때 그는 조금 놀라긴 하지만 예전처럼 감정이 폭발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차분한 태도로 집을 살피고 도면을 그리고 공사 과정을 조율합니다. 그 과정에서 옛 기억은 조금씩 떠오르지만 과거에 머무르기보다 지금의 일을 해내는 데 집중합니다. 이 모습은 어른이 된 우리가 과거의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습니다. 상처와 후회가 남아 있어도 결국 지금의 생활을 유지해야 하고 현재의 관계를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민이 서연의 집을 진심을 다해 설계하는 장면에는 스무살의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가 숨어 있습니다. 그때의 승민은 오해와 자존심과 서툰 표현 때문에 관계를 망쳤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서연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상처와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둘은 예전처럼 감정적으로 치닫지 않고 서로의 삶을 묻습니다. 이 대화 속에는 늦은 사과와 늦은 이해가 담겨 있습니다. 과거의 감정을 다시 불태우기보다는 그 시절의 자신과 상대를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이 과정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스무살을 떠올립니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쉽게 상처를 받았는지 왜 그렇게 사소한 말에 밤새 마음을 졸였는지 왜 꼭 그 사람에게 인정받아야만 내 가치가 증명된다고 믿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동시에 그런 모습이 부끄럽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그 나이가 아니면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사랑하고 그렇게까지 서툴게 실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내가 스무살의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그때의 너는 많이 어설펐지만 그만큼 간절했다고. 그 어설픔 덕분에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조금 더 조심스러울 수 있게 되었다고.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의 실패를 다시 상기시키는 영화가 아니라 결국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품어 줄 수 있게 만드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승민이 집을 완성해 서연에게 내어주는 장면은 스무살의 자신에게 건네는 하나의 선물처럼 보입니다. 너와 나의 그 시절이 완전히 잘못된 시간은 아니었다는 조용한 선언입니다. 영화를 여러 번 보다 보면 처음에는 서연과 승민의 연애 서사에 집중하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의 성장과 화해에 더 마음이 갑니다. 언젠가 또 한 번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도 또 다른 시선으로 영화를 읽게 될 것입니다. 아마 그때도 건축학개론은 여전히 스무살 나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일 것이고 동시에 지금의 나에게도 조금 더 너그러워지게 만드는 영화로 남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첫사랑 영화가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얼굴로 다가오는 자기 위로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