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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우리 집에도 있었던 덕수 같은 사람

by 건강백서랩 2025. 12. 1.

영화 국제시장은 한 명의 인생을 따라가며 한국 근현대사를 훑어 내려가는 작품이지만 화면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집으로 카메라가 옮겨 갑니다. 영화 속 덕수가 겪는 흥남 철수와 부산 피난 시절의 혼란 독일 파독 광부 시절의 고된 노동 베트남 전쟁 파병이라는 거친 사건들은 특별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를 버텨 낸 평범한 가장들의 삶과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우리 집에도 저런 덕수 같은 사람이 있었구나 우리 아버지 삼촌 할아버지 중 누군가는 저렇게 말없이 가족을 위해 자기 청춘을 내어주었겠구나 하는 마음입니다. 이 글에서는 국제시장 우리 집에도 있었던 덕수 같은 사람이라는 시선으로 영화를 다시 바라보며 덕수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아버지 세대의 삶과 그 세대를 바라보는 지금 세대의 감정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말들을 차분하게 정리해 보려 합니다.

 

국제시장 우리 집에도 있었던 덕수 같은 사람

우리 집에도 있었던 덕수 같은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는 특별히 훌륭한 말이나 거창한 신념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선택지를 고민하고 그 가운데 더 힘든 길을 묵묵히 택하는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흥남 철수 작전의 혼란 속에서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기억은 덕수의 평생을 규정하는 상처가 됩니다. 부산 국제시장 골목에서 가게를 지키며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어린 덕수의 모습은 그 시대 수많은 집안의 장남과 겹쳐 보입니다. 아직 어른이 되기도 전에 어른이 되어 버린 사람들 말입니다. 영화 속에서 덕수는 독일에 광부로 떠나고 이어 베트남 전쟁에도 파병을 자원합니다. 이 선택의 중심에는 언제나 가족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벌이를 위해 또 하나의 위험을 감수하는 그의 모습은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해외로 나가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며 돈을 보내던 파독 세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어 위험을 감수한 가장들의 이야기는 단지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라 많은 가정의 실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작품은 이 역사를 거창한 국가 프로젝트가 아니라 한 집안의 생활비와 학비와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그려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어느 순간부터 덕수라는 이름 대신 자기 집안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늘 말수가 적고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아버지 어린 시절 힘들었다는 말만 툭 던지고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던 할아버지 집안 형편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나 직업을 포기하고 공장이나 건설 현장으로 들어갔던 삼촌의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가족 행사에서 사진 몇 장만 남아 있는 그들의 젊은 날은 국제시장 속 덕수의 여러 장면에 포개지며 하나의 세대 초상화처럼 느껴집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괜히 부모님이나 조부모에게 전화하고 싶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덕수는 완벽한 인물이 아닙니다. 가족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자식 세대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기 책임이라고 말하며 가게와 집을 지키려 애씁니다. 관객이 덕수를 통해 우리 집에도 있었던 사람을 떠올리는 이유는 바로 이 불완전함 때문입니다. 실제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역시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고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그들의 말투 뒤에 삶의 무게와 시대의 환경이 겹쳐 보입니다. 국제시장은 이 복잡한 감정을 자극합니다. 덕수가 화면 속에서 나이 들어 갈수록 그와 닮은 주변 어른들의 얼굴이 함께 떠오릅니다. 그동안 쉽게 말로 꺼내지 못했던 고마움과 서운함 후회와 이해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지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한 세대 전체의 초상으로 확장됩니다.

전쟁과 가난이 만든 가장의 얼굴을 이해하는 일

국제시장을 보며 힘들어지는 지점 중 하나는 덕수가 자신의 욕망과 꿈을 거의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시절 꿈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영화 속 덕수는 그것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가 입 밖으로 꺼내는 말은 거의 언제나 가족과 생계에 관한 것들입니다. 동생의 학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 부모님과 남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말 가게를 지키기 위해 버텨야 한다는 말. 이는 그 시대 많은 가장들이 공유했던 언어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욕망은 가족이라는 더 큰 책임 앞에서 거의 지워지다시피 합니다. 전쟁과 가난을 겪은 세대에게 삶은 선택의 연속이 아니라 버텨야만 하는 연속에 가까웠습니다. 전쟁 고아로 시작해 피난민으로 살다가 도시 변두리에서 자리를 잡아야 했던 이들에게 미래를 설계한다는 말은 매우 사치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내일 당장 먹을 쌀과 아이들 교복 값이 먼저였고 집세를 연체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장남이나 가장에게 주어진 역할은 자연스럽게 희생과 책임이었습니다. 국제시장의 덕수는 바로 이 무거운 역할을 몸으로 보여 주는 인물입니다. 그가 독일 광부로 떠나는 장면에서는 긴장이 아닌 체념에 가까운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선택지가 많아서가 아니라 다른 길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대의 눈으로 보면 덕수와 같은 삶은 때로 답답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왜 본인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지 않았을까 왜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왜 위험한 파병까지 감수하면서도 속마음은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붙들고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시대가 그들에게 허락한 감정 표현의 방식이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서 가장의 불안과 두려움과 우울은 거의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감정이었습니다. 덕수는 자녀들에게 거칠게 말하기도 하고 부부 싸움 끝에 서운한 마음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감정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기 감정을 정리할 여유가 거의 없었던 삶의 구조가 있습니다. 매일같이 벌어야 하는 돈과 지켜야 하는 가족 그 사이에서 흔들릴 틈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국제시장은 이런 가장의 얼굴을 미화하지도 않고 완전히 비판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들이 왜 그렇게밖에 말하고 행동할 수 없었는지 관객이 조금이나마 이해해 보도록 안내합니다. 우리 집의 아버지 할아버지 역시 그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면서 말입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곧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그 세대의 선택과 태도로 인해 실제로 깊은 상처를 겪기도 했습니다. 다만 국제시장은 그 상처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한 걸음 물러나 전체 그림을 보게 합니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배경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 사회가 요구한 가장 역할 등 여러 요소가 겹쳐 지금의 부모 세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감정의 결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무조건적인 찬양도 거부감 섞인 비판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복잡한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우리 각자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의 집에는 어떤 덕수가 있었는지 그 사람의 삶을 어디까지 바라봐 줄 수 있는지라고 말입니다.

덕수 세대와 지금 세대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말들

국제시장은 마지막까지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나이 든 덕수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이곳저곳을 다니는 모습 자식 세대가 그를 이해하면서도 완전히 닮고 싶어 하지는 않는 복잡한 태도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에서 오랜 세월 찾아 헤맨 가족을 떠올리는 장면 등은 그 세대가 품고 살아온 감정의 깊이를 보여 줍니다. 이 영화가 지금 세대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아버지 세대와의 대화를 조금 더 시도해 보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겪어 온 시대와 감정을 알면 비록 모든 갈등이 풀리지는 않더라도 질문을 던질 용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에도 있었던 덕수 같은 사람을 떠올리면 여러 감정이 함께 올라옵니다. 감사함과 서운함 미안함과 억울함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입니다. 국제시장은 그 마음을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에게 한 마디씩은 더 건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자식 세대는 그 세대가 지켜낸 생존의 성과 덕분에 지금의 일상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부모 세대는 자식들의 선택을 예전 기준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습니다. 덕수는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는 자부심과 동시에 더 잘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함께 안고 살아갑니다. 이는 많은 아버지 세대가 공유하는 감정입니다. 지금 세대 역시 부모에게 받은 것과 받지 못한 것 사이에서 헷갈려 합니다. 모두가 완벽한 부모 완벽한 자식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서로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누군가의 침묵 뒤에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알고 나면 말하지 못했던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 나도 그때는 힘들었다는 말 당신 시대의 기준을 모두 따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겠다는 말 같은 문장들입니다. 국제시장 우리 집에도 있었던 덕수 같은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해 보면 단순히 옛날 세대의 눈물 짜는 감동극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는 점이 보입니다. 내가 누군가의 덕수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앞으로의 위기와 변화 속에서 나 역시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때 과거 세대의 방식과 똑같이 살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보여 준 책임감과 버팀의 의미를 완전히 버릴 이유도 없습니다. 결국 이 영화가 우리에게 권하는 태도는 한 가지입니다. 서로의 삶을 너무 단순한 잣대로 재단하지 말 것. 국제시장을 보고 난 뒤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 보고 사진첩을 한 번쯤 꺼내 보고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시작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이 가진 힘은 이어집니다. 우리 각자의 집에도 있었던 덕수 같은 사람을 떠올리며 뒤늦게나마 건넬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지금이 아마 가장 적당한 때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