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애와 결혼 생활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 중 하나는 “나만 너무 손해 보는 것 같아”일지 모릅니다. 영화 <비포 미드나잇>에서도 제시와 셀린은 서로에게 바로 이 감정을 쏟아냅니다. 한쪽은 “나는 이만큼 포기하고 따라왔는데, 당신은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나야말로 당신 커리어와 선택에 맞춰 희생했다”고 받아칩니다. 이 글에서는 <비포 미드나잇>을 바탕으로, 관계에서 ‘손해 보는 느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왜 서로가 동시에 손해를 주장하게 되는지, 그리고 실제로는 무엇을 점검해야 덜 지치는 관계로 돌아갈 수 있는지 연애·관계 심리 관점에서 정리해 봅니다.

비포 미드나잇 속 ‘손해 본 사람’ 싸움 구조
영화에서 제시와 셀린은 한동안 그리스에서 여름을 보내며, 친구 커플들과 식사도 하고, 아이들도 함께 돌보며 휴가 같은 일상을 보냅니다. 겉에서 보면 부러운 장면입니다. 그러나 둘만 남게 된 호텔 방에서, 관계의 균열은 한꺼번에 드러납니다. 이 싸움의 중심에는 “누가 더 많이 희생했는가”, “누가 더 많이 포기했는가”라는 보이지 않는 계산기가 있습니다. 제시 입장에서는 자신이 꽤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느낍니다. 다른 나라에서 살며, 전처와 아들과의 거리, 자신의 작가 커리어의 방향 등 여러 면에서 셀린과 아이들을 중심으로 선택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나는 가족을 위해 이만큼 조정해 왔다”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반면 셀린은 정반대의 장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인이 원하던 커리어 기회를 일부 접었고, 육아와 집안의 실무를 훨씬 더 많이 맡아 왔으며, 제시의 불규칙한 일정과 감정까지 견뎌 왔다고 느낍니다. 그녀에게서 나오는 말은 이렇습니다. “나는 내 삶의 상당 부분을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 재배치했는데, 그걸 고맙게 여기기는커녕 당연하게 여기는 거 아니냐.” 이 싸움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둘 다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각자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로 손해를 본 부분이 있습니다. 문제는 각자가 보는 장부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시는 자신의 글쓰기와 아들 문제를 크게 잡고, 셀린은 자신의 커리어와 육아 부담을 크게 잡습니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까지 했다”는 문장이 나올 때마다, 상대는 속으로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게 전부라고 생각해? 내가 한 건 못 보고?” 이렇게 해서 싸움의 초점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가’에서 점점 멀어지고, ‘과거의 장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로 이동합니다. 결국 비포 미드나잇이 보여주는 것은, “누가 더 손해 봤는지 증명하려는 싸움”이 얼마나 소모적인지입니다. 이 싸움에서 승자는 나오지 않습니다. 둘 다 자신의 희생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결국 “나는 이 관계에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결론에 가까워집니다. 영화가 불편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이 장면이 단지 영화 속 부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많은 커플이 실제로 반복하는 패턴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왜 둘 다 동시에 ‘내가 더 손해 보는 것 같다’고 느끼는가
관계에서 손해 보는 느낌이 생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내가 더 많이 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보면, 이 감정은 숫자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체감되는 에너지 소모’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어떤 행동은 실제로 시간이 많이 들지 않아도, 정신적인 에너지를 크게 갉아먹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아플 때 밤새 간호하는 일, 상대의 불안과 짜증을 반복해서 받아주는 일, 상대 가족과의 미묘한 관계를 중간에서 조율하는 일 등은 체감 피로도가 매우 높습니다. 이런 역할을 주로 맡아 온 사람은 “내가 더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반대로, 경제적인 책임을 크게 지고 있거나, 타지 생활과 이동, 경력 상의 리스크를 감수한 쪽은 자신이 ‘바닥’을 지키고 있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내가 이걸 버텨야 우리 가족 생활이 유지된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은, 비록 집안일을 상대적으로 덜 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내가 더 부담을 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각자가 힘들어하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둘은 동시에 “내가 더 손해 보는 것 같아”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여기에 더해, 회상 방식의 차이도 손해감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보통 “내가 했던 일”은 구체적으로 떠올리지만, 상대가 해준 일은 배경처럼 흐릿하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설거지, 아이 등·하원, 장보기, 병원 동행, 빨래, 청소처럼 자주 반복되는 일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원래 늘 누군가가 하는 일”로 인식되면, 그게 상대의 노동이라는 사실이 기억에서 희미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렇게까지 했는데, 저 사람은 뭐 했지?”라는 생각이 들기 쉽습니다. 비포 미드나잇에서는 이런 심리가 대화 속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제시는 자신이 포기한 것들을 강조하고, 셀린은 자신이 대신 짊어진 것들을 강조합니다. 둘 다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상대의 장부는 제대로 읽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손해 본 느낌’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마침내 “이 관계에서 나는 언제 보상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변합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작은 갈등도 휘발되지 않고 장부에 계속 누적됩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 늦게 들어온 밤, 잊어버린 약속 하나가 곧바로 “역시 나는 늘 손해 보는 쪽이야”라는 자기확인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손해 보는 느낌을 줄이기 위한 점검과 대화 방식
관계에서 손해 보는 느낌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각자 처한 상황과 체력,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시기에는 누군가가 더 많이 부담을 지는 것이 불가피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누가 더 많이 했나”를 끝없이 따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이런 질문에 함께 답해 보려는 태도입니다. 첫째, 서로의 장부를 바꿔 읽어 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나도 힘들어”라고 맞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상대의 하루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까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누구에게 신경 쓰고 있는지 말로 풀어 보게 한 뒤, “그게 그렇게 힘들었겠구나”를 한 번은 제대로 인정해 주는 것. 이 인정이 없으면, 상대는 계속해서 더 큰 예를 끌어와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됩니다. 비포 미드나잇의 싸움이 점점 과거의 이야기까지 끌고 들어오는 이유도 “지금 이 말만으로는 내 힘듦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둘째, ‘공정함’의 기준을 숫자가 아니라 합의로 다시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집안일을 5:5로 나누는 것이 이상적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소득 구조, 근무 시간, 건강 상태에 따라 6:4, 7:3이 더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둘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이 바뀌어야 할 시점(육아가 시작될 때, 한쪽의 업무 강도가 크게 올라갈 때 등)에 다시 협상하는 것입니다. “원래 네가 하던 거잖아”, “예전에 합의했잖아”라는 말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현실과 어긋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손해 보는 느낌이 들 때 곧바로 ‘장부 싸움’으로 가지 않도록 말의 방향을 조절하는 게 필요합니다. “나는 요즘 이런 점에서 좀 불균형하다고 느껴”라는 식으로, 감정을 전달하면서도 상대를 즉각적으로 가해자로 만들지 않는 문장을 연습해 볼 수 있습니다. “넌 항상”, “넌 맨날”로 시작하는 말은 거의 자동으로 방어를 불러옵니다. 방어가 시작되면, 그 순간부터는 서로의 장부를 꺼내 회계감사를 하는 상황이 됩니다. 비포 미드나잇의 호텔 장면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그 지점까지 가버리면 서로의 상처만 더 깊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도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이 관계에서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내가 스스로 설정한 기준이 너무 완벽하지는 않은가?” 모든 걸 잘 해내야만 ‘손해 보지 않는다’고 느끼는 성향일수록, 스스로에게도 과한 부담을 지우고 상대에게도 자연스럽게 높은 기대를 걸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현실이 그 기대를 따라가지 못할 때마다 손해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포 미드나잇>은 결국 이런 이야기를 건넵니다. 오래된 관계에서 “누가 더 손해 봤는지”를 끝없이 증명하려 들면 둘 다 지친다. 중요한 건 그 장부를 들이밀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덜 지치면서도 함께 갈 수 있을까”를 묻는 쪽으로 방향을 조금씩 돌리는 일이다. 지금 내 관계에서 손해 보는 느낌이 자꾸 든다면, 그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장부 싸움 대신 ‘우리의 현재와 앞으로’를 이야기하는 쪽으로 한 번 나아가 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