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투 빅 투 페일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다루면서도 극적인 히어로를 앞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미국 재무부와 연준, 월가의 최고경영자들이 모여 밤새 회의를 하고 전화와 숫자와 공포 속에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따라갑니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이 거대한 위기 한가운데 진짜 영웅은 있었을까.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모두를 위해 결단을 내렸을까. 아니면 모두가 각자 손해를 조금씩 덜어 보려는 계산 속에서 움직였을 뿐일까. 이 글에서는 투 빅 투 페일 위기에서 영웅은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영화 속 인물들을 다시 바라보며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영웅상과 현실에서 가능한 리더십 사이의 간격을 차분하게 짚어 봅니다. 동시에 거대한 금융위기처럼 보이는 사건 뒤에 결국 사람의 선택과 두려움과 욕망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살펴보며 위기를 볼 때 필요한 시선을 함께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왜 위기 속에서 영웅을 찾으려 할까
위기 상황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관객이 기대하는 서사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우왕좌왕하며 책임을 회피할 때 혼자서라도 진실을 말하고 불편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인물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옳다고 믿는 방향을 선택하며 결국 위기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보며 안도감을 느낍니다. 현실에서도 언젠가 누군가는 이렇게 행동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투 빅 투 페일을 보면 이 기대가 여러 차례 흔들립니다. 영화는 위기의 원인을 한 사람의 잘못이나 몇몇 탐욕스러운 은행가의 문제로 돌리지 않습니다. 이미 너무 복잡하게 얽힌 파생상품 구조와 과도한 레버리지와 느슨한 규제와 정치적 계산이 오랜 시간 쌓여 만들어 낸 결과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거대한 구조가 흔들리는 순간 한 사람의 도덕성이나 용기로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질수록 관객의 마음 한편에는 불편함이 커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영웅을 찾습니다. 누가 가장 많이 노력했는지 누가 더 큰 손해를 감수했는지 누가 더 먼저 위험을 경고했는지 따져 보며 그들 가운데 그래도 상대적으로 나은 사람을 찾아내고 싶어 합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를 단순한 이야기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영웅이 있는 이야기에는 책임에 대한 답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누군가 책임을 졌다면 나머지는 조금은 마음이 편해집니다. 하지만 투 빅 투 페일은 이러한 심리를 살짝 비껴갑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대부분 완벽하게 선하거나 완벽하게 악하지 않습니다. 재무장관도, 연준 의장도, 대형 은행의 최고경영자들도 각자 나름의 논리와 두려움과 이해관계를 안고 움직입니다. 관객은 그들을 보며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자리에 있었다면 나라도 저렇게 행동했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저 정도 권한을 가진 사람이면 조금 더 사람들을 위해 결정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함께 떠오릅니다. 이 모순된 감정을 통해 영화는 조용히 묻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영웅은 정말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투 빅 투 페일이 보여주는 현실적인 리더의 얼굴
투 빅 투 페일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는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입니다. 그는 위기를 완전히 막지 못한 책임을 동시에 지고 있는 사람이며 위기가 터진 후에는 더 큰 붕괴를 막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움직여야 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영화는 그를 전형적인 영웅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는 압박감 속에서 신경질적으로 굴기도 하고 정치적 계산을 해야 할 때도 있으며 자신의 판단이 옳은지 확신하지 못한 채 결정을 밀어붙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관객이 폴슨을 보며 느끼는 점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그는 위기를 외면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가운데 그는 월가의 최고경영자들을 불러 모아 협상을 시도하고, 연준과 함께 구제금융의 방식과 규모를 조율하며, 의회를 설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설명하고 호소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 역시 체제의 일부로서 큰 잘못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동시에 붕괴를 어느 정도 완화하기 위해 몸을 던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깁니다. 월가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몇몇 은행 최고경영자는 끝까지 자신의 회사와 주주 이익을 우선시하며 구제금융 조건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들의 모습은 탐욕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복잡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직원과 투자자와 회사의 역사까지 떠올리며 결정을 내립니다. 물론 그 선택들 가운데 상당수는 결국 일반 시민의 세금 부담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악당으로만 규정해 버리면 위기의 본질은 흐려집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영웅과 악당이라는 단순한 구도를 깨뜨립니다. 대신 위기 속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그래도 나쁜 선택보다 덜 나쁜 선택을 택하려 애쓰는 리더들이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명성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고 unpopular한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의회에 구제금융 법안을 설명하며 욕을 먹는 일을 감당하거나 여론의 반발을 감수하고 과감한 개입을 선택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이 순간의 용기는 전통적인 의미의 영웅 행동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의 환호 대신 비난과 의심을 감수해야 하는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투 빅 투 페일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은 이렇습니다. 현실의 리더는 완벽한 도덕성을 가진 영웅이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와 압박과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그래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려고 버티는 사람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말이 그들을 면죄해 주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위기 속에서 누가 영웅이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당시 주어진 조건과 선택지의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위기에서 영웅을 찾기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투 빅 투 페일 위기에서 영웅은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영화를 보면 한 가지 결론에 가까운 감정이 남습니다. 영웅을 찾는 대신 구조를 이해하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위기를 특정 인물의 용기 부족이나 탐욕만으로 설명해 버리면 다음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교훈을 얻기 어렵습니다. 누군가를 악인으로 규정하고 그 사람만 치워 버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의 경제 위기를 통해 경험해 왔습니다. 영화가 보여 주는 핵심은 시스템 전체가 리스크를 키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 안에서 개인은 크게 벗어나기 어려운 유인 구조 속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레버리지와 파생상품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분위기, 단기 실적에 따라 보너스가 결정되는 보상 체계, 규제를 완화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정치적 구호 등이 함께 맞물려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누군가 혼자서 도덕적 결단을 내리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그 결단이 자신과 조직의 손실로 직결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투 빅 투 페일은 두 층위의 책임을 동시에 보여 줍니다. 하나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유지해 온 정책 당국과 금융권의 구조적 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과도한 위험을 감수한 개인의 책임입니다. 이 둘을 같이 보는 시선이 없으면 위기에 대한 논의는 감정적인 분노에 머무르고 다음 위기 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쉽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결국 나에게까지 이어집니다. 나는 위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금융 상품과 위험 구조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내 돈이 어디에서 어떻게 굴러다니는지 관심을 가지고 보는지 말입니다. 투 빅 투 페일은 단순히 미국 이야기로만 소비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국가부도의 날 같은 영화와 함께 보면 한국 사회 역시 비슷한 구조와 유혹과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됩니다. 위기에서 영웅은 있었을까라는 질문에 영화는 확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 대신 조금 다른 방향의 답을 암시합니다. 모두가 영웅이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공포와 탐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질문하는 시민이 늘어날수록 다음 위기의 피해는 줄어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금융 리터러시와 정책 감시와 투표와 여론 형성이 결국 위기 대응 능력을 결정한다는 메시지가 조용히 깔려 있습니다. 투 빅 투 페일을 다시 떠올리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완벽한 영웅을 기다리는 대신 내 삶의 규모 안에서 어떤 선택을 준비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일입니다. 과도한 빚과 단기 차익에만 의존하는 재테크를 경계하고, 위기 뉴스가 나올 때마다 공포에 휩싸이기보다 구조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태도입니다. 어쩌면 이런 작은 준비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사회 전체가 다음 위기에서 덜 흔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투 빅 투 페일은 영웅 서사가 아니라 각자에게 숙제를 남기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위기 속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찬양받을 영웅 한 명이 아니라 혼자만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 다수의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