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든 피겨스는 나사에서 실제 일했던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당시 미국 사회는 인종 분리와 성차별이 일상처럼 존재하던 시기였고 과학과 공학의 세계는 거의 전적으로 백인 남성들의 무대였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캐서린 존슨과 도로시 본과 메리 잭슨은 흑인이라는 이유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장벽을 마주하지만 뛰어난 계산력과 집요한 공부를 바탕으로 결국 나사의 우주 개발 경쟁 한가운데까지 들어갑니다. 히든 피겨스 흑인 여성 수학자가 바꾼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들은 단순한 조연이나 미담의 주인공이 아니라 미국 우주 개발의 성공을 뒷받침한 핵심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숫자와 데이터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히든 피겨스가 드러낸 나사의 숨은 인재들
히든 피겨스의 무대는 미국과 소련이 우주 개발 경쟁을 벌이던 냉전 시기의 나사입니다. 인간을 우주 궤도에 올려 보내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와 공학자가 모여들었지만 화면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가장 아래층에는 수학 계산을 도맡아 하던 흑인 여성 직원들이 있습니다. 당시 나사 안에는 흑인 여성만 따로 모아 놓은 계산 부서가 있었고 이들은 사람 컴퓨터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양의 계산을 처리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회의록에 올라가는 일은 거의 없었고 중요한 발표의 자리는 대부분 백인 남성 동료들이 차지했습니다.
그 가운데 캐서린 존슨은 유독 뛰어난 수학적 감각을 가진 인물로 그려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숫자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재능을 보였고 어려운 미분 적분 문제도 빠르게 풀어내는 학생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캐서린은 어느 날 유인 우주 비행 궤도 계산을 담당하는 부서로 발령을 받습니다. 이곳은 나사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 부서 가운데 하나이며 회의실에는 온통 백인 남성 연구원들뿐입니다. 캐서린은 이 방 안의 유일한 여성이고 유일한 흑인입니다. 그녀에게 주어진 첫 인상은 직원이라기보다 잠시 빌려 온 계산 도구에 가까운 위치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부서의 책임자는 캐서린이 던지는 정확한 답과 빠른 계산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기존에 있던 공식과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던 문제를 캐서린이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내면서 그녀는 점점 회의실 가운데로 불려 나갑니다. 처음에는 문밖에서만 보던 칠판 앞에 서서 직접 궤도 계산식을 적어 내려가는 장면은 히든 피겨스라는 제목을 가장 잘 설명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얼굴이 숫자와 수식의 힘으로 드디어 드러나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도로시 본과 메리 잭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로시는 흑인 여성 계산 부서의 사실상 책임자 역할을 맡으면서도 정식 직책과 승급에서는 늘 밀려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새로 도입된 전자식 컴퓨터의 매뉴얼을 스스로 공부하고 프로그래밍을 익힌 끝에 흑인 여성 동료들을 통째로 새로운 기술 부서로 이끌어갑니다. 메리는 탁월한 공간 감각과 공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엔지니어에 도전하지만 법과 제도는 흑인 여성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녀는 법원에 직접 나가 자신이 왜 이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이 공부가 왜 필요한지 설득해야 합니다. 세 사람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히든 피겨스 흑인 여성 수학자가 바꾼 역사는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하루하루 버티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 결과였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흑인 여성 수학자가 역사를 바꾼 구체적인 순간들
히든 피겨스가 인상적인 이유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라는 큰 주제를 추상적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흑인 여성 수학자들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했는지 구체적인 장면을 통해 보여 줍니다. 대표적인 것이 캐서린 존슨이 맡았던 유인 우주 비행 궤도 계산입니다. 우주선이 지구를 떠나 궤도에 올랐다가 다시 안전하게 돌아오기 위해서는 복잡한 수학적 계산이 필요한데 당시 새로 도입된 전자식 컴퓨터가 내놓은 값은 아직 완전히 신뢰받지 못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우주 비행사 본인이 직접 캐서린에게 계산 결과를 다시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 컴퓨터 캐서린이 계산한 값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장면은 상징적인 의미가 큽니다. 그동안 시스템의 가장 아래에서 숫자를 다루던 인물이 프로젝트 전체의 안전을 책임지는 위치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흑인 여성 수학자가 바꾼 역사라는 문장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만약 궤도 계산이 조금이라도 잘못되었다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을 것이고 미국의 우주 경쟁에서의 위치는 크게 흔들렸을 것입니다. 영화는 이 긴장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캐서린이 묵묵히 칠판 앞에 서서 계산을 이어 가는 모습을 길게 보여 줍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설명해야만 했던 사람이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숫자와 수식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내는 장면입니다.
도로시의 선택도 시대를 앞서간 결정이었습니다. 전자식 컴퓨터가 도입되자 기존의 계산 부서는 언젠가 필요 없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이 불안해할 때 도로시는 도서관에서 프로그래밍 언어 책을 빌려 와 혼자 공부합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극히 일부의 사람만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무였습니다. 도로시는 자신만 살아남는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흑인 여성 동료들을 모아 함께 공부하고 나중에는 컴퓨터 운영팀 전체를 이끄는 책임자가 됩니다. 자동화 시대에 일자리가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 앞에서 대체될까 두려워 숨는 대신 기술을 이해하고 주도권을 잡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메리의 도전은 제도와 법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그녀가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 공과 대학 수업을 이수해야 했지만 그 학교는 백인 학생만을 공식적으로 받아 주는 곳이었습니다. 메리는 법원에 직접 나가 판사 앞에서 자신이 왜 이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단지 개인의 승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의 여성과 흑인 학생들을 위해 길을 열고 싶다는 말에 판사는 제한적이지만 예외를 허용합니다. 이 장면은 히든 피겨스 흑인 여성 수학자가 바꾼 역사가 숫자 계산만이 아니라 제도와 관념까지 흔든 과정이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학위 한 장과 자격 한 줄이 바뀌면서 그 뒤를 따라올 사람들의 경로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남는 히든 피겨스의 메시지
히든 피겨스를 보면 자연스럽게 지금 우리의 일터와 일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겉으로는 기회의 평등을 말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고 특정 직무에는 여전히 특정 성별이나 배경의 사람이 더 잘 어울린다는 편견이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흑인 여성 수학자들이 겪었던 노골적인 차별과 지금의 상황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숫자와 결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압박감은 시대를 넘어 비슷하게 반복됩니다. 실력만 있으면 된다는 말은 언뜻 공정해 보이지만 출발선과 환경이 완전히 다를 때는 현실을 가리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캐서린과 도로시와 메리는 이러한 모순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현실의 차별을 모르는 척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회의실에 들어가기 위해 사다리를 놓고, 화장실 하나를 이용하기 위해 긴 거리를 뛰어 다니며, 새벽과 밤 시간을 쪼개 공부를 이어 갑니다. 히든 피겨스를 보는 관객에게 남는 감정은 그래서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묵직한 존경에 가깝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원망과 피로감을 숫자와 공부와 행동으로 바꾸어 냈습니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능력을 끝까지 써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 영화가 특히 일과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추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지금 하는 일이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커질수록 도로시의 선택은 현실적인 힌트를 줍니다. 새로운 도구를 두려워하기보다 먼저 이해하고 배우려는 태도, 혼자만 살아남기보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려는 태도 말입니다. 또한 메리의 법정 장면은 나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넘어갈 수 없는 제도적 장벽이 있을 때 목소리를 내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때로는 누군가가 규칙에 질문을 던져야 그 규칙이 조금씩 바뀝니다.
히든 피겨스 흑인 여성 수학자가 바꾼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런 결론에 닿게 됩니다. 역사는 늘 무대 중앙에 선 몇 사람의 이름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름 없이 숫자를 계산하고 회로를 설계하고 데이터를 정리하던 수많은 숨은 인물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의 숨은 피겨일 수 있습니다. 조직 안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내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내고 변화의 필요를 느낄 때 공부와 행동으로 조금씩 판을 바꿔 나간다면 언젠가 누군가는 우리의 노력을 기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히든 피겨스는 그 가능성을 조용히 상기시키는 영화입니다. 이 작품을 보고 난 뒤라면 적어도 내 자리와 내 능력을 너무 작게 평가하지는 않게 됩니다. 누구나 누군가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조금은 더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